민호: 나도 나이 들고 싶다, 나이 들면 누나처럼 그렇게 명쾌해지나?
영숙: 지금 이 순간, 이 인생이 두 번 다시 안 온다는 걸 알게 되지.
<'굿바이 솔로’중>
지금보다는 조금이나마 어릴 때 이 드라마를 볼 때엔 민호. 수희. 미리. 지안.. 이 슬픔마저도 풋풋하고 예쁜 아이들에게 이입이 되었었다. 나이가 어정쩡하게 들고나서 다시 본 지금. 나는 왠지 영숙의 마음이 더 알알이 보인다.
한 때엔 절묘하다.라고 생각했던 저 대사가 어딘가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 또한 나이 탓이라고 돌린다. 이 쿨하디 쿨한 대사에 느껴지는 불편함은 이제 내가 그들의 대화 속에 생략되어 있는 목적어가 무엇인지 알아버리고 또 그 현실을 쿨하디 쿨하게 수긍할 수 만은 없다고 선택했기 때문이다.
명쾌해짐. 무엇이 명쾌히 분명해지는가.(내가 무엇을 원하는 지)가 분명해진다. 그러기에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이 순간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다.
나 또한 20대에는 그렇게 생각했기에 어서 빨리 나이가 들고 싶었다. 30대가 되어 욕망이 정돈되고나면, 그 욕망을 취하는 의지 또한 집중되리라고 생각했었다. 나는 멋지고 책임있는 30대가 되고 싶었다. 이제 그 나이에 서고 나니 멋진건 모르겠고 책임은 꽤 있는 나를 발견한다. 넘치는 열정을 주체못해 이리저리 휘청거리던 20대를 지나 이제 거를 것은 거르고 취할 것은 억지로라도 떠밀려 취한 30대에 이르고 나니 욕망은 정갈해졌는데 나는 무거워졌다.
화엄경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인다라의 하늘에는 구슬로 된 그물이 걸려 있는데 구슬 하나 하나는 다른 구슬 모두를 비추고 있어 어떤 구슬 하나라도 소리를 내면 그물에 달린 다른 구슬 모두 따라 떨리며 운다.’
사랑을 사랑하고, 그리움을 그리워하던 20대 청춘의 나이에 이 글을 읽으면서 내가 떠올린 나의 구슬들은 세계 각 대륙에 하나 하나씩 흩어져 있던 그리운 이들이었다. 함께 있었던 시간보다 떨어져 있었던 시간이 더 많아 오히려 마주치면 어색할 이들, 하지만 그렇기에 더 덕지 덕지 억지스런 그리움과 환상을 보탠 나의 또 다른 거울들. 풀어내고 싶은 열망은 가득한데 풀어낼 당위도 대상도 없어 동동거리던 스물 몇살 나에게 그들은 내 막연한 그리움을 해소할 상상속의 기제들이었다.
혼자 길을 걷다가 문득 하늘을 볼 때면, 또는 잠이 안오는 밤 뒤척이다가 보면 부산한 잡념들이 실타래 처럼 날아올라 이들에게로 향했었다. 언젠가 내가 스스로 홀홀히 설 수 있을 만큼 어른이 되고나면 이 곳 저 곳 민들레처럼 자유롭게 방랑하며 이 들을 찾아 보고 싶다-그런 희망을 가졌었다. 그러다 보면 먼 옛날 어느 길에다 흘린 것 같은 나의 울음도 찾아 질거라는. 그런 막연한 기대를 했기에, 그 당시 나에게 화엄경의 이 문구는 언젠가 어딘가에 있을 나의 도플갱어들과 재회할 수 있으리라는 그리움으로, 언젠가 그 길에서 그들을-또 나를- 찾을 수 있으리라는 그런 미지에의 설렘으로 읽혀졌었다.
이제 30대가 되어 다시 접한 인다라의 하늘.
이상에 대한 자유와 그리움보다는 사람에 대한 연민과 책임감으로 한 올 한 올 짜낸 나의 그물 안에는 어느덧 내가 원했던 것 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이 걸려있다. 내 은밀한 상상속의 도플갱어들이 아니라 펄떡 펄떡 살아있는 나의 절절한 사람들. 나와 같은 살과 피로 만들어졌지만 나와 너무나 다른 세계를 가지고 전 속력을 다해 나의 세계와 부딪히는 현재의 사람들로 가득하다. 남편. 부모님. 시댁. 회사. 동료. 친구… 나의 등뼈와 촘촘히 연결된 인다라의 그물에는 이처럼 너무 많은 이들이 걸려 있어 운신을 할라치면 좀처럼 느릿느릿 굼띠고 구석 구석 엔간히 뻐근하다.
그러기에 (내가 무엇을 원하는 지)명쾌해졌지만, 또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이 순간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 다는 것 또한 알게 되었지만. 나는 그냥 이대로 있던 길에 서있다. 욕망인지 책임인지, 또는 사랑인지 두려움인지는 알수 없으나 나는 오랜 습관처럼 그물을 바리 바리 챙겨 비단 드레스 자락마냥 샤르르- 검은 하늘에 펼친다.
칠흙같이 어둡고 끝을 알수 없게 깊은 나의 그물에 알알히 박혀 별처럼 반짝 반짝 울고 있는 여린 마음들을 본다. 애시당초 내가 원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내 것이 아니라고 뻔뻔스레 고개 돌리기에는 나는 그들이 너무 아프다. 그래서 그들을 모두 안고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 지)를 잡기 위하여 지금 (우리가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이 순간, 다시 돌아오지 않을 이 순간을 위해 또박.또박. 느리고 무겁게, 등뼈 뻐근해지도록 묵직하게 계속 걸어간다.
스산했던 겨울의 마지막. 얼음처럼 차가워져 멍-해진 머리와 파르르 날 선 가슴을 몰래 숨기고. 부부가 무엇일까. 생각했다. 생각하다 힘들면 쉬고. 쉬다가 생각이 찾아오면 또 그걸 지독하게 부여잡고 간절히 생각했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남을 내 안에 담고. 그를 거울로 삼아 비춰지는 나의 욕망에만 충실할 수 있었던 때엔 모든게 참 쉬웠는데.
오로지 나만을 담은 욕망. 나 이제 스스로 홀홀히 서서 그것을 바라보니, 그 내용은 정갈해졌으나 오히려 그로 인해 더 이상 욕망이 아니게 된 빛바랜 꿈을 발견한다. 내가 오로지 나일 수만은 없는. 나는 그물에 걸린 하나의 구슬도. 그물을 끌고 있는 손도 아닌 그물 자체이고 하늘 전체인 이 순간. 나만의 욕망은 아름답지만 도피에 지나지 않음을 알 정도로 나는 책임감 있다. 아쉽게도 그렇다.
그리하여 ‘나’는 없어졌지만 또 ‘나’는 이렇게 남아 그물을 끌고 그물을 엮어 구슬을 울린다. 언젠가 너무 무거워지면 찢어질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아닌가보다. 아직은 당신의 울림이 나에게 전해지는 걸 보면 아직 우리의 그물은 이리도 끈덕지게 엮여져 있는가 보다.
영원히 다시 돌아오지 않을 이 순간. 나는 단 한번 뿐인 다시 돌아오지 않을 선택을 한다. 사랑이 가고 또 다른 사랑이 온다. 적어도 지금 한번 뿐인 이 인생에서, 그걸 나도, 당신도 원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히 알기에.
<2010.1.25.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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